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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2.16
  • [패션인사이트] 패션인사이트 선정 ‘2013 올해의 패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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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의 구매심리 침체, 성숙기에 도달한 백화점, 글로벌 SPA 공세 등으로 최근 여성복 시장은 말 그대로 ‘사면초가’ 형국이다.


그런데 이러한 위기 상황에 빛을 발하는 기업이 있다. 바로 38년 역사의 여성복 전문 기업 대현이다. 모두가 주저할 때 신규 브랜드 ‘듀엘’을 론칭해 확고한 아이덴티티와 우수한 품질력으로 가치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을 사로잡았으며, 이후 프리미엄 패딩 열풍을 겨냥해 국내 최초로 여성용 다운·패딩 전문 브랜드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했다. 또한 기존 브랜드들을 꾸준히 새모습으로 리뉴얼시키는 데 성공해 안정된 수익을 올리며 귀감이 되고 있다.


이에 <패션인사이트>는 ‘2013 올해의 경영인’으로 신현균 대현 회장을 선정하고 그의 경영 철학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잘 하는 것에 집중하면 불황도 문제 없습니다”
위기를 통해 ‘선택과 집중’의 중요성 깨달아





◇ 위기에서 배운 지혜


70을 바라보는 신현균 회장은 아직도 현장을 뛰는 1세대 오너 경영인이다. 신 회장에게 ‘올해의 패션인’ 선정 소식을 전하자 그는 거듭 “과찬”이라고 일축하며 겸손을 보였다.


“어떻게 하면 좋은 옷을 만들까를 고민해왔습니다. 여성은 두 가지 요인에 의해서 옷을 사거든요. 하나는 필요, 또 하나는 욕구이지요. 필요에 의한 소비는 저렴한 가격의 SPA 브랜드들이 채워주고 있으니 우리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잘 만든 옷을 제공했고 이 전략이 적중했던 것 같습니다.”


신 회장은 ‘비워야 채울 수 있음’을 IMF 시절 몸소 체험했다고 한다. 1977년 ‘페페(현 블루페페)’를 시작으로 ‘마르조’ ‘씨씨클럽(현 씨씨콜렉트)’ ‘모델리스트’ 등을 론칭해 성공하며 1997년 매출액이 무려 4000억원에 달했다. 이에 자신감을 얻어 다른 분야 사업을 확장하기도 했다.


유럽에서 스포츠 캐주얼 붐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이탈리아의 ‘스포트 리플레이’를 라이선스로 전개했다. 이 브랜드가 인기를 얻은 후에는 또 다른 스포츠 브랜드 ‘엔진’을 론칭했으며, 이후에는 대전에 패션 전문 백화점을 지향하는 ‘엔비 백화점’을 열어 유통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은 신 회장을 딜레마에 빠져들게 했다.
“스포츠웨어가 10대를 상대로 하다보니 여성복 저리가라할 정도로 사이클이 빨랐거든요. 힙합이 큰 인기를 얻는가 싶더니 어느새 시들어 바지 한 장도 안팔릴 정도였습니다. 6개월 전 100억원 수익냈던 브랜드가 6개월 후에는 수익이 제로였으니 말 다했죠.”


◇ 부도대신 워크아웃을 택하다


결국 1999년 IMF 외환위기까지 덮치며 대현은 워크아웃을 신청하기에 이른다.


“그때 140여 개 기업이 워크아웃을 신청했는데 그중에 대현은 워크아웃 제외 1순위였습니다. 패션이 소비재 사업이다보니 수출이나 기간산업보다 중요성이 덜하다는 인식이 강했거든요. 은행에서는 부도를 권유했습니다. 다 정리하고 개인 재산이나 좀 챙기라고. 그런데 나 하나 살자고 그럴 수 있나요. 우리 회사 믿고 어음할인한 거래처들이 있는데. 선산까지 팔고 개인소유 사옥을 회사로 돌리며 재건을 기약했습니다.”


이러한 진심이 통해서일까. 대현은 패션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워크아웃 대상 기업에 선정됐고, 임직원들은 임금 동결안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신 회장의 현업 복귀’를 내걸었다. 그만큼 직원들과 신뢰가 두터웠던 것이다. 돌아온 신 회장에게 남겨진 것은 현금 20~30억원이 고작이었다. 그때 그는 ‘잘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6~7개의 브랜드를 정리하고 논현동 사옥과 지앤코를 매각했다. 엔비백화점은 GS리테일에 임대했다. 이후 회사가 안정권에 돌입한 이후에도 무리한 투자는 꺼렸다. 자산의 반은 주주와 직원들에게 돌리고 반은 새로운 비즈니스에 투자했다. 일부는 건물 등 부동 자산을 확보하는 데 사용해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했다. 그 결과 매출은 2500억원 규모로 줄었지만 수익은 오히려 증가했다.


◇ 전문 경영인 체제로 책임 경영 강화


신 회장은 현재 조카인 신윤건 사장과 공동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다. 경영에 대한 권한은 대부분 신 사장에게 맡겼다.


“일 많이 하는 사람이 대표 맡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오래 전부터 경영은 전문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1997년 지엔코를 설립하며 이석화 사장을 해외에서 영입해 전권을 맡기기도 했었고요. 그때만해도 보기 드문 일이어서 내부에서 반대도 많았지만요.”


대현에 차장으로 입사에 이사까지 오른 아들 신윤황 이사에게 승계할 계획은 없냐고 묻자 신 회장은 손사래부터 쳤다. 


“아직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만약 본인이 그만한 능력이 있고 모두가 해낼 수 있다고 인정하면 대표에 오를 수는 있겠지요.”


◇ 중국 시장 진출로 사업 규모 확대


대현이 주목받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는 중국 사업 때문.
대현은 6년전 부터 ‘모조에스핀’과 ‘주크’를 중국에서 라이선스로 전개하고 있다.
전개사는 랑시. 당시에는 작은 회사였지만 현재는 중국 전역에 480여 개 유통망을 보유한 탄탄한 패션 기업으로 성장했다.


랑시는 ‘모조에스핀’과 ‘주크’를 고급화 전략을 내세워 70여 개 중국 백화점에 유통시키고 있다. 중국 내에서도 브랜드 인지도가 점차 올라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들이 매장을 찾는 일도 빈번하다.


“처음에는 랑시에서 합작회사로 하자고 제안해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기술 지원해줄테니 자신감 갖고 해보라고 라이선스를 내줬죠. 아무래도 직접 하는 것보다는 더욱 잘할 수 있는 기업에서 맡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현재의 성과에 대해서는 흡족스럽습니다. 최근에는 ‘듀엘’도 중국에서 전개해보고 싶다는 러블콜을 받았습니다.”


◇ 좋은 옷으로 불황 넘어선다


수십년간 패션의 파도에 몸담아온 베테랑 선장 신현균. 그는 내년 패션 시장을 어떻게 전망할까?


“사업부에서 종종 그런 소리를 합니다. 글로벌 SPA에 밀려서 안된다고. 그러나 나는 그 의견에 반대합니다. 물론 SPA브랜드, 편집매장, 스트리트 패션, 온라인 쇼핑몰이 선전하며 제도권 로컬 브랜드 입지가 좁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내년도 비슷한 형세가 이어질테고요. 하지만 기업들도 불평불만만 해서는 안됩니다. 시장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으니 백화점 홀대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럴 때일수록 단기적인 매출이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우리만이 잘할 수 있는 좋은 옷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브랜드 가치를 지닌 명품들은 유럽 불경기속에서도 살아남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2013.12.16 김우현/최은시내 기자